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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7 책주 02/12/2020 486
Subject: 한국일보의 추억(2) <수상>


조국을 떠나 몇십년을 해외에서 보내고 돌아와
한동안 몸담았던 중학동 14번지 앞에 서서 옛터를 바라보네.
구사옥이 화마에 휩싸여 7명의 희생자를 낸 자리에
불사조처럼 재건, 당시엔 그리 우람하게 보였던 13층 사옥은
허물리어 온데간데 없어지고 초현대식 쌍둥이 고층건물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네.
사라진 그 건물 속에서 피 말리며 일했던 사원들은 다 어디로 갔나.
한국일보의 일관된 정신과 전통이 있었을까 잘 모르겠네
상업지임을 표방해서 재미있고 신선하고 매력이 있었던 건 확실해.
그렇다고 정론을 무시한 건 아니었지. 춘추필법이 사시 제1조였지.
사내분위기가 자유스러워 열정이 남달랐고 창의성이 뛰어났지.
한마디로, 잊지 못 하는 것은, 백상의 독특한 스타일을 따라
회사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낭만적이었기 때문인 듯.
무엇이든지 흘러가고 변하고 사라지는 것이 세월인데
그때의 한 신문사 모습이 사라졌다고 한들 대수이겠는가.
그러나 기억이 점점 희미해지는 가운데도 잊혀지지 않는 것,
생생한 것이 몇몇 있다네.
무시무시한 속도의 일제 윤전기가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어
마감시간에 쫓기던 그 중압감이 아직도 간혹 꿈에 나타나는 것이
안타까움이라고나 할까, 보람스러운 후유증이라고나 할까...

‘다른 신문과 다른 신문’
우리들은 무엇이 다르고 무엇이 안 다른지 막연했지만
이 말장난 같기만 한 주장이 스스로 멋지게 생각되기도 했었네.
현관 한쪽 벽면에 눈길을 끌던 ‘빛이 달리는 새벽‘ 글귀 아래
잉크냄새 풍기는 듯 신문뭉치를 끼고 뛰어나가는 배달소년들 모습의 판화.
그 자신도 싫어하지 않았던 별명 왕초가 나이어린 직원을 소년사원이라고
우대해서 부르게 했네. 그렇게 호칭하지 않으면 불호령이 떨어지기도 했네.
그런 백상 장기영이 61세에 타계, 반신 동상이 되어 현관을 드나드는
사람들을 지켜보고만 있을 줄이야.
맞은편에 있던 엘리베이터 타고내리는 사람들도 보고 있었겠지.
시시한 이야기라고 치부해버릴 수도 있겠지만, 하나의 상징적이라고 할 수 있는 사건부터 시작해 보면 어떨까.
어떤 과학부장은 수재라는 소문이 있었는데 발군의 기사로
독자들을 사로잡았었네. 술을 좋아했던 그는 대낮부터 거나하게
취해 VIP전용을 타고 올라가며 여봐라는 듯이 “나 왕회장님
행차하신다” 소리지르기도 했네.
견습 떨어진지 얼마 되지도 않은 기자는 저녁때 만취해서 들어와
엄청 큰 유리창을 때려부수기도 했네. 그런데도 별일 없었다네.
기강이 말이 아니라고 해야 옳을지, 관용정신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네.

‘다른 신문과 다른 신문’
1면에 날마다 시가 있는 세계서 유례없던 신문,
혼란스런 사회상 가운데서 쉬어가는 마음의 오아시스였네.
그 쬐끄만 박스는 중대기사가 넘칠 때는 편집하는데
걸림돌이 되었지만 빼놓지 않으려고 무지 애들을 썼네.
긍정적이든 회의적이든 그 매력적인 특색은 어디로 갔나.

‘다른 신문과 다른 신문’
견습기자 시험자격에 고졸까지 넣어 실력으로 뽑힌 인재들이
당당히 활약케 하던 그 선구자적 진취성은 어디로 갔나.
그 자신도 선린상고 졸업이 최종학력이지만, 장기자로도 불리워지기 좋아했던 百想 장기영은 뛰면서 생각한 금융인 언론인 체육인 정치인 등등 국내외를 종횡무진 큰 족적을 남겼네.
신문제작에 존경스러운 진두지휘력을 갖고 있던 홍유선 부회장도 고졸학력이었네.
처음으로 견습기자 공채제도를 시행한 한국일보는 선배나 후배나 나가는
사람도 많아 기자 양성소, 기자 사관학교라고 불리워지기도 했다네.
사람을 아끼던 장기영은 나갔다 들어오는 사람을 다시 받아주기로
유명했는데 일곱번째는 절대 안 받아준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네.
신문제작은 오케스트라라고 강조하던 그의 쇠소리는 어디로 갔나.
그는 별관에도 사무실을 두고 아침마다 많은 민원인을 만났네.
쉰들러처럼 결점도 있었겠지만 딱한 사정들에 힘닿는 대로 도와주었네.
교정부 개개인의 외상술값을 조사해서 모두 갚아주는 자상함도 있었네

‘다른 신문과 다른 신문’
여성을 우대해서 어느 해는 여성기자만 뽑은 때도 있었네.
그때 출신이 사장에까지 오르기도 한 유일한 신문이었네.
코리아 타임스 편집국에 선천적 왜소인이 있었는데 서울대학교 졸업식에
갔다가 그의 우수성을 발견하고 특채했다네.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다른 신문과 다른 신문’
심층기사 기획기사도 넘쳐났고, 정치 경제 문화 등 대형칼럼은
한국일보가 시조였는데 각신문들이 따라왔네. 문화사업 사회사업 또한
그렇게도 풍성했네. 에베레스트 등반 성공, 일본 속의 아스카 백제문화,
가스폭발 등 일본의 폐해 패턴들이 10년쯤 뒤에 한국에 오는 현상,
고속도로 수막현상 등 위험예방 수칙, 암을 정복한다 등등의 시리즈,
고정란인 장바구니 생활경제, 가정과 여성, 문학작품상 연극영화상
고교야구대회 바둑대회 연날리기대회 거북이마라톤
미스코리아 선발등 끊임없이 분출하던 창조정신은 어디로 갔나.
펄펄 뛰는 신선하고 역동적인 지면임을 자타가 공인했었네.
한때 최고의 발행부수에 오르기도 했었네.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중대하다고 예단한 백상은 경제신문을 창간,
나라살림을 이끌었네. 이에 그치지 않고 영자신문과 소년한국일보도 창간하고 일간스포츠도 창간했네. 주간한국 주간여성 등도 나오자마자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네. 전국의 신문들이 모방하느라 바빴네.
해외지사도 가장 먼저 가장 광범위하게 개설했네.
최초로 제호와 사설부터 가로쓰기 한 것은 전면적 한글가로쓰기 실행을 이끈 획기적 용단이었네.

‘다른 신문과 다른 신문’
한국 최초의 TV 방송국은 소실되어 끝내 재건되지 못했네. 재보험사가 방화라고 억지 주장하며 보험금을 안주었네. 그러더라도 자력으로 자금을 만들어 재건할걸 그랬네. 천만 이산가족 찾기 캠페인을 더욱 생생히 커버했을텐데... 아쉬웠지만 종이신문으로도 위력을 발휘 전국을 흥분의 도가니로 만들었네.
상봉을 애타하는 혈육들의 명단과 극적으로 재회한 사연을 실어
평소보다 엄청나게 많은 부수를 인쇄하느라 윤전기가 불이 날 지경으로
고장이 걱정되기도 했네.
또한 사할린 동포(백상은 교포라는 명칭을 절대 못쓰게 했다) 귀국을
추진하는 운동도 벌였네.

‘다른 신문과 다른 신문’
정권을 찬탈한 세력은 신문이 발행되기 전에 검열을 한다며 교열대장을
갖고 자기들 사무실로 오라고 했네. 빨간 붓으로 찍찍 그어댔네.
전에는 통과되지 않은 기사는 연판에서 끌로 깎아낸 채 윤전기를 돌렸네.
악랄한 그자들은 다시 편집해서 검열 흔적을 없애, 괴기 충격적인 지면이
배달되지 않도록 하라고 강압했네. 마감시간에 쫓겨 무척 힘들게 했네.
중앙정보부 요원은 매일 신문사로 출근해 감시의 눈초리를 번득거렸네.
“너네 신문은 믿지를 못해. 준여당지인줄 알아오는데 갑자기 뒤통수를
친단 말이야.” 그들 세력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네.

‘다른 신문과 다른 신문’
정말 준여당 신문이었나?
워싱턴특파원 시절 전화기 두 대로 한쪽귀엔 취재원과 연결하고 한쪽귀엔
서울본사와 연결해서 즉석번역하며 기사를 송고하던 조세형이 그의
칼럼문장에서 흔히 쓰는 반전문구처럼, “천만에 말씀!”
사시 제3조가 不偏不黨이 아니었던가.
기자들은 도도히 흐르는 저항정신을 가슴속에 간직한 채 일했네.
찬란한 기획과 사업으로 정상의 신문을 자부하던 시절 편집국장 이원홍도
중심적인 활약을 했네. 그러나 그를 가리켜 기자들은 석두라고 불렀네.
부당한 별명이었네. 반어적 애칭이었겠지. ‘컴퓨터 달린 불도저’였던 왕초
밑에서 그도 역동적으로 일했네.
그는 취재기자였을 때는 낡은 경비행기를 자원해서 타고 다녔네.
야간에 신문제작을 한 팀이 야당당수의 집 화재사건을 다루었네.
큰불이었는데 방화가 의심된다고 기사가 나갔네.
군부세력들은 가만두지 않았네. 편집국장을 남산의 중정에 매일 출근케 해서
하루종일 앉아있다 가라고 했네. 이런 수모를 한달 이상이나 강요했네.
그런 뒤 어찌된 일인지 주일대사관 공보관으로 발령이 났고 그뒤
KBS사장이 되었네. 천만이산가족 찾기 캠페인을 가지고 가서, TV의 위력을
동원해 전국을 그야말로 눈물바다로 만들었네. 한국일보 최초의 기획이
빼앗긴 셈이 되었었네.
그뒤 전두환이 집앞서 골목성명을 발표할 때 몇몇 추종자 속에 장승처럼
서있었네. 거물 언론인 거물 정치인도 되었을 텐데 안타까웠네.
그는 어디로 갔나.

‘다른 신문과 다른 신문’
일주일에 한번 화요회 모임을 가졌는데 널따란 편집국에 여러국 사원들이
모여들어 장기영의 일장 토크를 경청했네.
편집국장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앉아 거침없이 설파하는 그의 화두는
국한된 것이 아니고 광범위한 것이어서 명언이 많았네. 그의 어록은
책으로 출간되었네.
“기자는 600도의 열정을 가지고 또한 (-)600도의 냉정을 가지고
기사를 써야한다.”는 등 상징적인 표현도 많았네. “기자에게는 봉급으로
쌀 두가마니를 주면 된다. 한가마니는 먹고 살고 한가마니는 팔아서
용돈으로 쓰면 된다“는 식으로 억지했는데, 듣는 사람들이 거부감을 가지지 않고 재미로 여겼네.
장기영은 수갑을 차고 지프차 운전석 옆자리에 앉아서 연행된 적이 있었네.
군부세력이 만들 정당이름이 사회노동당이라고 특종보도를 하는 바람에
붙잡혀 갔던 것이었네.
화요회 석상에서 그는 술회했네. “그때 여늬때처럼 교통순경이 알아보고
경례를 붙였는데 손이 묶여 거수경례로 응답을 할 수가 없어 안타까웠어.”

‘다른 신문과 다른 신문’
백우영 문화부장은 신문이 나온 뒤 부원들과 소주를 폭음하며 울분을 삭이지 못한 채 집으로 가려고 택시를 탔네. 그 속에서 그는 정권 잡은 자에게 욕을 퍼부었네. 술주정이 아니라 언론탄압에 항거하는 절규였겠지.
택시 운전사가 파출소 앞에 차를 세우고 신고했네.
그들은 한달 이상을 구금해 놓고도 기소를 하지 못했네. 재판 과정에서
그 지독한 욕설이 공개될까봐 걱정되어서였겠지. 그는 어디로 갔나.
편집부장 이준기는 야근을 끝내고 이른 아침 집으로 가느라고 동사무소 앞을 지났는데 누군가 동적부를 뒤지고 있었네. 누가 그러겠는가. 이부장은 일부러 “너 간첩이지?” 하면서 두들겨 팼네.
이 사건도 그들은 창피해서 입건을 못했네. 그는 어디로 갔나.
소령 출신 채의석은 기사를 고치라 빼라 하는 검열관과 대판 싸웠네.
그들은 간덩이가 부었냐고 소리질렀네. 그는 어디로 갔나.
그들은 시위나 파업같은 기사는 모조리 1단으로 처리하도록 강요했네.
편집기자들은 1단이나마 한데 모아 넓은 지면을 차지하게 했네.
언론탄압에 무언으로 항변, 그 효과를 극대화 한답시고 그런 어설픈
짓을 하기도 했네.
그들은 공해기사는 아예 못 내게 했네. 그러나 편집기자는 공해기사임을
암시해서 눈치 채도록 했네.
“남해안 마을에 아프다 아프다 병 만연” 식으로.

‘다른 신문과 다른 신문’
저항정신의 최고봉은 김주언 기자의 ‘보도지침’ 폭로와 그것을 자신이 창간한 ‘말’지에 게재한 김태홍의 용기였네. 그들은 의연하고 떳떳하게 잡혀갔네. 영웅이 따로 있는 건가. 기자협회에 참여했던 간부들도 잡혀가 고초를 겪었네. 박정삼은 집에 손님이 와있다고 부인이 전화로 알려주는데도 “누구라고?” 되풀이 물으며 제발로 귀가했다 잡혀갔네. 노향기는 도피행각을 했네.
재워 보내고 용돈을 주어 보낸 동료들이 도청으로 탄로되어 기관원이
“내 놓으라”고 욱박지르며 수색에 끌고 다니기도 했네. 그의 어머니는
“내 자식 도망다니는 것도 무섭지만 아들의 동료들이 위협 받고 고통을
당하는 게 더 마음 아프다”고 했었네. 그는 자수했네.
그들은 다 어디로 갔나.
또한 특기할만한 언론사의 한 페이지는 한국일보 사원들이 노조를 만든 것이었네. 그 삼엄한 공포통치 시절에 기적같은 일이었네.
언론노조는 처우개선 보다 알릴 권리가 가장 큰 목적이었네.
법원이 부당하다고 판결하는 바람에 한동안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가
기어코 결성이 되었는데 전국의 신문과 방송이 우후죽순처럼 다 따라했네. 언론자유를 지켜내려는 양심이었고 몸부림이었네.
그 선구자적 정신은 어디로 갔나.

‘다른 신문과 다른 신문’
기자들은 기사도 개성 있게 썼고 편집도 다른 신문과 다른 신문답게 했네.
자유민주주의 투쟁이 가장 중대한 과제였지만, 그 외에도 신문이란
할 일이 많은 것이겠지.
편집국장 김성우는 길따른 번지수 개혁을 처음 부르짖었네. 많은 세월이 흐르고 나서야 개편되었다네. 그가 편집부에 있을 땐 ‘타고 가는 사람들 걸어가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유세때 관권 금권 동원 사례를 꼬집었네. 그는 ‘문화게시판’이라는 대형 난을 만들어 문화계 정보를 집대성했네. ‘新·禮記’라는 기획물을 연재해 도덕불감증의 세태를 바로잡으려고 진력했네. 그는 문학기행, 음악기행까지 깊이 있고 매력적인 문장으로 섭렵했네. 그는 어디로 갔나. 장재구 당시 사장은 우측보행을 역설했는데 이 또한 많은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실행이 되었네.
“특종은 일요일 저녁에 잘 터진다.”던 장기자의 경종에 귀기울이며 내외근 기자들이 합심해서 악전고투 추종불허의 지면들을 만들어 냈네.
야근을 하고 있는데 여수 밀수왕 허봉용을 붙잡았다는 정보가 들어왔네.
‘크게’ 취급하자는 편집기자의 제의에 사회부 데스크를 맡은 이성준은
“오케이”하며 여수 지방관세청에 전화를 걸었네.
“나 본청 청장인데 허봉용 잡았다메. 자세히 말해봐.”
관명사칭의 불법성은 나중 문제고 전화선을 타고 들어오는 체포작전 경위는 고스란히 녹음되어 기사화되었네.
한밤중에 다섯명의 동네소년들이 집에 돌아오지 않아 경찰에 신고되었네.
무인도로 간다고 했단다. 한국일보는 단순사건으로 취급하기 보다, 어린이들이 꿈을 펼치기에는, 판에 박은 요구로 억압하는 세태가 문제라는 판단을 했네. 상당히 크게 다루었네. 헛간에서 놀다 아침에 귀가하면 망가(만화)가 될 수도 있는 위험을 무릅쓰고... 그들은 신문을 살려주려고 진짜 영정도로 갔음이 판명되었네. 각계의 관심과 토론이 이어졌었네.
강원도에서 등반 훈련을 하던 산악회원들이 눈사태를 당한 참변이 있었네. 당국은 눈이 녹을 때까지 시신수습은 고사하고 현장에 접근해 가기도 불가능하다고 판단 손을 놓아버렸네. 한국일보 불굴의 정신은 그냥 두지를 않았네. 주민들의 도움으로 기어코 사고지점을 발견 사진을 찍어왔네. 충격적인 특종이었네.

‘다른 신문과 다른 신문’
그 반면에 기사보다 앞서 나간 예측제목이 낭패한 경우,
디스커버리가 곧 발사될 긴박한 때였네. 시간을 다투기는 방송에 뒤지는
신문이라 잘못하다가는 구문이 되기가 쉽네. 또한 이 우주왕복선의
성공확률은 99.999999%라 했네. “발사 예정”등의 제목을 달았다가는
상황을 못 읽는 바보로 취급받을 수밖에 없네. 당연히 “발사 성공”이라고 나갈 수밖에 없었네. 그런데 문제가 생겼네. 카운트 다운하다가 고장이
발견돼 연기되었네.
다른 조간들은 한수 더 떠 “성공적 궤도 진입” “궤도 선회중”이라고
했네. 오보의 시행착오로 큰 교훈을 주었네.

‘다른 신문과 다른 신문’
개가 사람을 물면 기사가 안 되고 사람이 개를 물면 기사가 된다고 어느
신문학 책에 써있네. 광화문 인근 거리서 도사견에 물려 소년이 참혹하게
죽은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네. 더군다나 이를 구경하던 3백명 가량의 사람들이 그냥 서서만 보고 있었네. 이상우 종합편집부장은 ‘아! 무정’이라는 부제를 커트까지 떠서 큰 비중으로 다루자고 했네.
그 현장 바로 옆에 있는 한 신문사의 사장은 “우리 앞마당에서 일어난 일을 왜 한국일보처럼 취급하지 못하느냐“고 화를 냈다는 이야기네.
금강여객이라는 버스회사가 당시로선 파격적인 처우개선을 했는데 몇%를
올렸다고 하지 않고 버스운전기사 10만원 버스안내양 5만원으로 제목을
달아 시각효과를 극대화했네. 독재자가 칭찬하는 바람에 전국의 버스회사가 다 따라하느라고 법석을 떨었네.
비가 안와 지독하게 가물었을 때 금강방조제 체절공사 기사가 들어왔네.
사회부 야근데스크가 조판하는 공무국으로 뛰어 내려와 전달했네.
편집기자는 대충 읽어보고 기사에도 없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어깨 제목을 달았네. 그러자 이튿날 비가 쏟아졌는데 그 독재자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은 만고의 진리다”라고 자화자찬했네.
미증유의 이리역 폭발사고, 대왕코너 큰불로 많은 인명이 뛰어내린 참사 등 전심전력하는 취재력과 기동성으로 완벽하게 커버했네. 이리주재 반장은 자신의 집이 거의 완파되었는데도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취재를 했네.
레이건 대통령의 핵무기 증강계획을 대서특필한 한국일보 지면과 경쟁사
조간들의 1단 취급은 그 이튿날 석간신문들과 외국신문들이 우열을
판단해주었네.
어느날 야근 때 MIG18기를 몰고 탈출한 이웅평의 귀순동기 기사가
와이어를 타고 ‘이빨가는 소리’를 내며 들어오고 있었네. 와이어실
당번기자가 앞대가리를 찢어 정판을 하고 있는 편집기자에 전달했네.
대충 요점을 파악해서 제목을 미리 달아 문선에 넘겼네.
계속기사가 들어올 때마다 훑어보기만 하고 넘겼네.
경기판 부터 완벽하게 커버했네. 경쟁지는 경기판은 고사하고
서울판도 도심 일부만 기사가 들어갔네. 이럴 때 흔히 경쟁지는 초상집이
된다고들 했네.
편집기자 오계수는 와리스케(레이아우트)를 하느라 빨간 색연필로 고친 데를 또 덧칠해 고쳐 무슨 추상화 같은 설계도를 만들었네. 이렇게 해서 탄생한 어피어런스는 유려하기 그지없었네. 한국일보답게 감칠맛이 난다고 하는 걸까. 하나의 예술이라고 해도 좋았었네.

‘다른 신문과 다른 신문’
몸담아 일했던 사옥도 인재들의 모습도 사라졌지만, 그 젊고 발랄했던
불굴의 정신은 어디서 꺼지지 않고 내재하고 있을지.
어떤 언론사도 비슷하지만, 독재정권에 전면전을 선포하고 강렬한
언론자유 투쟁에 돌입하는 것은 그때의 엄혹한 상황에선 머리로
바위치기처럼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네. 5.18 등 수많은 민주화 운동 보도가 통제 속에서 손발이 묶였지만, 그러더라도 정책비판도 못하고 추적폭로기사나 심층보도도 약했던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하겠네.
상징적인 예로 김영삼이 단식을 하고 있을 때 전국의 신문들이 한줄도 비치지 못했네. 김영삼이 “야당당수가 단식을 하며 죽을 지경에 있는데
반달곰 기사만 대서특필하고 있는 놈들은 뭐하는 놈들이냐“고 대로했네.
환경에 높은 관심을 보이는 한국일보가 반달곰 기사를 특종보도한 것이었네.
백상 장기영은 불안 없는 정치, 실업자 없는 경제, 전쟁 없는 통일을
강조했었는데 그런 선견지명이 진척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너무 일찍 생을
마감. 모두 애석하기 짝이 없다고 했지.

‘다른 신문과 다른 신문’
대만사태를 취재하러가 상륙정이 전복되는 바람에 행방불명된 최병우를
비롯해 그동안 고인이 된, 쟁쟁했던 사우들도 많네. 그 모습들이 그립다.
자력으로 이름들을 기억해 내보려고 하니 깜박깜박 도무지 생각이
안 나다가도, 반짝반짝 성이나 이름 한자가 떠올라 신통하게 풀네임이
알아지기도 하네. 지금은 역시 이세상 사람이 아닌 조코(조세형의 별명)의
강조처럼 스타가 많아야 한다던... 그 기라성들 다 어디로 갔나.

‘다른 신문과 다른 신문’
한국일보를 다시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매력 있는 신문이었네.
개성 있고 정감 있던 한국일보,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을 발굴해 내던
그 정신이 어떤 방법으로든 연면할 수 없을까.
지난날의 제작기술이나 종사자의 의식구조가 구시대적이라
치부해버릴 수도 있겠고, 지금은 디지털 온라인 시대라
종이 신문은 설 땅이 없어져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함은 분명하지.
그러나 종이신문만의 감칠맛은 완전히는 꺼지지 않을 줄 믿네.
컴퓨터시대에도 연필로 써야만 하는 한국일보 출신 김훈작가도 있는 것처럼 유행과 선호는 변천할 수 있으니까. 르네상스가 올 수도 있겠지.

한국일보 종사자들의 그 순수함과 열정과 집념이 그리운 채
발걸음을 돌리네.

이제는 보이지 않는 구사옥이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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